식품 박람회나 마트에 가보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중 상당수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단순히 맛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변화하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니즈를 제품에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공장에서 잘 만든 제품을 어떻게 팔 것인가를 고민하는 프로덕트 아웃 방식이 통했다면 지금은 시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한 뒤에 제품을 만드는 마켓 인 전략만이 유효합니다.
최근 식품 시장을 관통하는 가장 큰 트렌드는 가정간편식(HMR)과 밀키트의 일상화입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조리의 번거로움을 피하려는 성향은 단순히 간편함을 넘어 제대로 된 한 끼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기획 포인트는 R&D 기술을 통해 집밥의 퀄리티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역의 유명한 국밥을 제품화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단순히 국물을 얼려서 파는 냉동 방식은 유통 기한은 길지만 소비자의 냉동실 공간을 차지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상온 유통이 가능한 레토르트 기술을 적용하면 보관 편의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져 편의점이나 해외 수출까지 판로가 확장됩니다.
실제로 전남의 한 김치 제조업체는 이러한 R&D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일반적인 김치는 발효 가스로 인해 유통 중 포장이 터지거나 맛이 변하기 쉽습니다. 이 업체는 가스 흡수제를 포장재 내부에 부착하고 특정 유산균을 활용하여 발효 속도를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캔 김치 형태로 제품을 출시하여 여행객과 캠핑족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냄새 없는 김치라는 콘셉트로 해외 시장까지 진출했습니다. 이는 전통 식품에 포장 공학이라는 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한 가치 소비 트렌드에 발맞춘 대체 식품 개발도 놓쳐서는 안 될 분야입니다. 비건이나 저당 그리고 고단백 제품은 더 이상 소수만을 위한 시장이 아닙니다.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일반 소비자들도 식물성 단백질 제품을 찾습니다. 콩을 활용한 대체육 개발 시 가장 큰 난제는 콩 특유의 비린내와 퍽퍽한 식감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압출 성형 기술과 천연 향미 소재를 배합하는 R&D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고기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맛있는 식물성 요리를 제안하는 기획력이 필요합니다.
제품 기획 단계에서 공무원이나 기업 지원 담당자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표준화입니다. 손맛에 의존하는 제조 방식은 대량 생산과 품질 유지에 치명적입니다. 할머니의 손맛을 염도계와 당도계 그리고 pH 측정기를 통해 데이터로 수치화하고 이를 공정 레시피로 변환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로컬푸드 가공 센터나 농업기술센터가 지역 농가들에게 제공해야 할 핵심 지원도 바로 이 레시피의 표준화와 공정 설정 컨설팅입니다. 맛의 표준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학교 급식이나 대형 유통 채널에 납품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는 자체 브랜드(PB)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사이의 전략적 선택이 중요합니다. 초기 제조 시설을 갖춘 업체라면 대형 유통사나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대신 생산해 주는 OEM이나 제조업자가 개발까지 주도하는 ODM 방식으로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다지는 것이 좋습니다. 까다로운 대기업의 품질 기준을 맞추며 제조 노하우를 쌓은 뒤 그 수익을 바탕으로 우리만의 철학을 담은 자사 브랜드를 론칭하는 단계적 성장 전략이 리스크를 줄이는 길입니다.
결국 성공하는 가공식품은 책상 머리가 아닌 데이터와 현장에서 나옵니다. 타겟 고객층이 20대 여성인지 50대 중장년층인지에 따라 포장 디자인의 폰트 크기부터 맛의 강도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하되 소비자가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로 하는 형태 즉 뜯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컵 과일이나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덮밥 소스 등으로 가공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기술로 완성도를 높이고 기획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것 그것이 바로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우리 농식품 기업이 살아남는 R&D의 비밀입니다.
와이에스엠경영컨설팅 윤수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