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이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성숙시장을 다루는 편이며, 그래서 읽는 문법 자체가 앞의 세 편과 다릅니다.
이 시장에서 한국의 위치는 화려합니다. 일본 수입화장품협회의 2025년 연간 실적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 수입 화장품 시장에서 점유율 30.8퍼센트로 4년 연속 1위를 지켰고, 2위 프랑스 22.8퍼센트와의 격차도 더 벌렸습니다. 한국의 대일본 수입액은 1417억 7000만 엔, 약 1조 3242억 원에 이릅니다.
국내 시각은 대체로 이 대목에서 만족합니다. 4년 연속 1위, 프랑스와 격차 확대. 그러나 이것은 성숙시장을 잘못 읽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순위가 아니라 성장 곡선을 보라
성숙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순위가 아니라 성장 곡선입니다. 같은 협회 자료를 보면 한국 화장품의 대일본 수입액 증가율은 2024년 40퍼센트에서 2025년 5.6퍼센트로 급감했습니다. 1위라는 사실은 그대로지만, 그 자리를 만든 성장의 동력이 눈에 띄게 식은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시장의 진짜 신호입니다. 신흥시장에서는 성장에 올라타는 것이 전략이지만, 성숙시장에서는 성장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시장이 이미 포화되었고 강력한 현지 대기업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숙시장에서 이기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현지 강자가 소홀히 한 구조적 빈자리를 찾고, 브랜드로만 소비자와 싸우는 대신 시장 전체에 공급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한국이 색조를 파는 유일한 시장이다
일본을 다른 어떤 시장과도 구분 짓는 신호가 있습니다. 한국은 다른 대부분의 시장에서 기초화장품을 주력으로 수출하지만, 일본에서는 색조화장품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고령화된 일본에서 현지 업체들이 소홀히 한 10대와 20대 색조 시장의 빈자리를 한국 브랜드가 채웠기 때문입니다. 2025년 일본의 수입 색조가 대부분 감소하는 가운데 립스틱류만 유일하게 4.3퍼센트 성장했고, 그 성장을 한국이 8.3퍼센트 증가로 견인했습니다. 같은 기간 프랑스의 컬러 메이크업 수입은 13.8퍼센트, 중국은 14.2퍼센트 감소했습니다.
이것이 성숙시장의 전형적인 빈자리입니다. 시장 전체가 늙어가며 젊은 색조를 아무도 챙기지 않을 때, 그 자리를 정확히 파고든 것이 한국이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제조 강국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일본은 소재와 바이오 기초 연구, 그리고 의약외품 기술에서 여전히 세계 최상위입니다. 시세이도와 가오 같은 현지 대기업이 오랫동안 약용화장품 영역을 독점해왔고, 그 축적은 한국이 정면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상용화의 속도에 있습니다. 최근 일본 소비의 핵심 키워드가 성분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한국 브랜드는 엑소좀이나 마이크로바이옴 같은 성분을 의약외품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화장품 범위 안에서 빠르게 상용화하는 방식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현지가 독점한 성벽을 정면으로 넘으려 하는 대신, 그 옆에서 화장품으로 먼저 성분을 시장에 올리는 전략입니다.
완제품보다 벌크가 빨리 큰다
성숙시장의 다음 국면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신호는 제조업 역전입니다. 관세청과 대한화장품협회 통계를 보면, 대일 수출에서 완제품의 증가율 12.4퍼센트보다 화장품 원료와 벌크의 증가율 29.7퍼센트가 더 가파릅니다.
한국이 일본에 완제품 브랜드를 파는 단계를 넘어, 일본 시장 전체에 제조 역량을 공급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여러 인플루언서 브랜드가 한국 제조사를 택하고 있는데, 현지 공장 대비 훨씬 빠른 개발 주기가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한국 제조사가 이바라키현에 일본 현지 공장을 완공해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현지 브랜드가 선호하는 산지 표기를 유지하면서도 빠른 개발 주기를 현지에서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4년 연속 1위라는 사실에 기대어 성장이 꺾인 국면을 읽지 못하면, 초기 열광이 식은 시장에서 다음 자리를 놓칩니다. 순위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를 새로 여는 것, 그리고 브랜드로만 싸우지 않고 공급자의 자리까지 함께 보는 것이 이 시장의 과제입니다.
이 편에서 다룬 다섯 개 신호의 전체 분석과 그로부터 도출한 세 개의 공백, 그리고 제품 방향과 규제, 발주 경로로 옮긴 역산 자료는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윤수만의 화장품 실무 인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